2025년 8월 빌바오, 산세바스티안 여행: 기념품은 언어


빌바오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바스크지방의 언어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자치구(?)이면서도 로망스어와 한톨도 관련없는 고립어인 바스크어의 명맥을 여태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 독특해 꼭 한번은 구경을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스페인에 붙어있으면서 어떻게 여태껏 전혀 다른 언어를 보전하고 있었던걸까 하는 의문은 빌바오 상공에서 이미 조금 해소가 되었다. 비행기가 산골짜기를 넘어들어가고 있었기 때문 ㅎㅎ 그렇지 산촌 마을이라면 가능했겠지!

피렌체 수영장에서 놀다가 바로 빌바오로 여행을 나오는 이상한 일정이었는데 산악동네라 그런지 아무리 저녁이라 해도 8월초의 날씨가 20도밖에 안되어 물놀이 하다 나온 옷차림이 민망할 정도였다.





작은 도시의 좋은 점. 공항 앞에서 버스타면 눈깜짝할 사이에 시내 ㅎㅎ 스페인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 중 하나답게 말끔하다. 호텔 들어오자마자 물이랑 간단한 야식거리를 찾으러 인근 마트로 향했다. 그 지역만의 것을 맛보고 싶어서 바스크 물, 바스크 맥주, 바스크의 감자칩 이딴것들을 찾아다녔다. 바스크 감자칩이 맛있었다.


어째서인지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고 기억도 흐릿하지만 좋은 호텔이었던게 분명하다. 별다른 불만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ㅎㅎ 부킹닷컴이나 아고다를 통해 예약하는 것보다 Sercotel Ayala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는 것이 보통은 더 저렴한 듯 하다.




아침식사를 하러 들어간 카페. 별 생각없이 카푸치노와 사람들이 많이 시키는 메뉴 하나를 시켰는데 정말 바가지만한 카푸치노가 나왔다. 지금 확인해보니 카푸치노 가격이 4.50 유로. 바가지로 안나오면 억울할 금액ㅎㅎ 카푸치노를 송아지처럼 마시고 음식도 시켜놨으니 또 먹고... 맛은 있었으나 나의 불찰


산행 열차를 타고 올라가 빌바오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특이한 열차이고 무계획 여행자답게 시내를 빈둥거리던 차에 일단 타긴 했지만 엄청난 전경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다녀올만한 정도.




빌바오는 바스크 지방에서는 큰 도시이고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이다보니 스페인의 다른 지방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아서 바스크어가 많이 쓰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스페인에 안정적으로 속해있으니 어쩔 수 없는 소수언어의 운명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바스크어 보존과 진흥을 위해 자치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하는 것 같았고, 바스크 서점도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빌바오 시내에서 놀고 다음날 아침은 산세바스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정말 알아볼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바스크어 안내판 ㅎㅎ 현지인들에게 다정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라도 바스크어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어쩐지 매우 부끄러워서 한마디 인사도 하지 못했다. 기념품처럼 머리에 남아있는 바스크어는 화장실(Komunak)과 작별인사인 Agur! 

언어가 낯서니 산세바스티안으로 출발하는 버스터미널을 알아보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커다란 건물에 Bilbao Intermodal 이라고 써져 있는데도 어디에 꽂혔던건지 못알아보고 쇼핑몰로 오인해서 바보짓을 한데다가, 터미널 들어가서도 표지판이 저모양이니 표파는 곳도 재주껏 찾아야했다. 나는 Avanza 회사의 버스표를 현장에서 구매했다. 현장구매는 지하1층. 
이런 낯선 상황을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다. 계획성 없는 스스로를 위해서는 정말 다행인 점.


산세바스티안(바스크어로는 도노스티아)은 너무 귀엽고 기분좋은 동네다.


하지만 사실 해변을 제일 기대하고 갔었는데 정작 해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콘차 해변을 즐길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나 장소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파라솔이나 선베드 빌리는 곳이 없어보였다. 바다를 즐기지 못한게 매우 아쉬웠고, 일찍 포기하지 못해서 돌아다니느라 체력 소모. 미리 잘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상류 P로서는 안될 일이었음.

그래도 도노스티아는 너무나 사랑스럽다다. 아마도 보르도를 가기 전까지는 나의 2025년 최고의 여행지였던 것 같다.


빌바오도 그렇지만 도노스티아도 바스크식 타파스인 핀초스 바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가게마다 들려서 핀초스 한두개와 술한잔을 곁들이는 것이 이 여행의 재미였다. 술이 조금 오른 기분으로 사람 구경을 하며 핀초스를 먹던 행복함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 혼자 하는 여행은 거리들과 풍경과 내 행복이 기억에 오래 남아서 좋다.

도노스티아에서는 낮시간을 잘 놀고 저녁에는 빌바오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또 다시 핀초스 바로 향했다. 역시 지금 생각해보아도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핀초스. 



바르셀로나에서는 타파스 한접시가 턱없이 비싸서 혼자 먹고 다니기가 힘들었는데 이 핀초스 지역은 천국이었다. 더 간단한 음식과 그만큼 호의적인 가격. 마치 이탈리아 바에서 커피 한잔을 비우고 가듯이 바에 선채로 핀초스와 와인 한잔을 끝내고 (다음 가게로) 가는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신났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핀초스는 올리브와 엔초비, 긴디야를 조합한 길다(Gilda). 여행 후 집에 와서도 몇번을 흉내내서 만들어 먹었다. 지금도 딱 세 꼬치만 늘어놓고 화이트와인이랑 먹고싶다...


핀초스를 필두로 바스크지방 여행 중 먹어볼만한 건 역시 바스크 치즈케이크. 이름부터가 이미 바스크 치즈케이크이니깐.



Bassk Cheesecakers ⭐️⭐️⭐️⭐️⭐️
a slice of San Sebastian. 지나칠 수 없지. 산세바스티안과 빌바오에 모두 지점이 있는 가게였는데 나는 빌바오에서 사먹었다. 






도노스티아에서 돌아온 밤에 저녁을 먹으러 간 핀초스바. 역시 베르무트를 곁들여서. 밤 열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인파로 우글거렸다. 가게도 발디딜틈 없고 길바닥에서도 앉아서 먹고. 나도 악착같이 먹었다 ㅎㅎ


이 광장에도 핀초스바가 줄줄이 있는데, 문제는 잔뜩 신난 나도 줄줄이 들어가 먹어서 어디서 먹은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래는 모두 Plaza Nueva에서 갔던 핀초스바들. 유명한 한 곳을 특정해 가기 보다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먹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애초에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온 여행이었기에 빌바오, 산세바스티안 여행의 기념품은 당연히 언어였다. 그래서 바스크어로 된 책을 사고 싶어져 서점에서 시간을 한참 보냈다. 다만 읽게 될 가능성이 희박한 책을 사기란 쉬운일은 아니었다. 오만 책을 들었다 놨다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은 시집 하나를 잡았고 당연하지만 여태 펼쳐보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ai 번역으로라도 읽어보겠지.

결론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몇십년 전만 해도 분리주의 활동이 있었던 지역이라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계속 그렇게 평화로우면서도 세상 하나뿐인 언어도 잃지 않기를. ag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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