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푸에르테벤투라 여행: "wrong time, wrong place"


푸에르테벤투라의 사막
푸에르테벤투라: 그래도 좋았던 것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사막은 정말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사막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 푸에르테벤투라 첫인상


바르셀로나에서 푸에르테벤투라로푸에르테벤투라: 황무지
지인의 지인 찬스로 카나리 제도의 섬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피사 공항에서 이 섬으로 가는 직항이 있긴 했으나 여러 이유로 바르셀로나를 경유하여 (바르셀로나도 여행하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프리카 방향으로 내려가는 비행기는 처음이라 꽤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비행기가 푸에르테벤투라 상공에 이르렀을 때부터 이미 잘못된 여행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마른 지상 풍경과 리조트 단지. 사막의 압도하는 광활함이 아닌 민둥산과 광산같은 황량함.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니 정말로 척박한 땅과 이 섬의 이름을 닮은 세찬 (모래먼지)바람이 나를 반겼다. 



푸에르테벤투라라는 이름의 황무지
초록이 없는 푸에르테벤투라
해는 뜨겁고 바다는 아름다운데 초록이 없다. 초록은 산에도 없고 마트에도 없다. 시들시들 반쯤 저세상 간 채소를 훨씬 웃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제일 신선한 채소는 냉동채소라고 이 곳에 사는 사람이 그랬다. 내가 특별히 파릇한 산을 좋아하고 신선한 계절야채 염불을 하는 사람이냐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별 생각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조차 초록색의 압도적인 공백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은퇴 후 삶을 즐기는 섬이다. 그 예쁘고 살기 좋은 자기네 나라를 두고 어째서 이 사막을 선택했는지 나는 도저히 모를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이유가 있겠지.

뒤늦은 여행기를 작성하며 찾아보니 영화 듄(Dune) 2 촬영지였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로 내륙과 섬의 남단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촬영지를 추측할 수는 없으나 어차피 푸에르테벤투라 전체가 아라키스같다. 애초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무지이니 굳이 영화 속 그 장소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여러 사정으로 카나리 제도의 다른 섬들을 함께 여행할 수는 없었지만, 그란 카나리아(Gran Canaria)같은 다른 섬들은 적어도 푸에르테벤투라보다 아름다운 것이 분명했다. 인근의 다른 섬들도 함께 여행할 때 더욱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지인의 집에서 머물러서 숙소 정보는 없고, 차 렌트는 완전 필수. 
5월 기준 여름옷에 밤에 입을 겉옷 정도만 챙겨도 충분하다. 수영복도.



🏝️ 아름다운 사막


Parque Natural de Corralejo
Parque Natural de Corralejo
사하라의 모래가 날아와 형성된 사막. 아름답고 그자체로 강렬했다. 푸른 바다도 아름다웠다. 쏟아질 것같은 별을 상상하고 밤에 다시 찾아갔는데 날이 아니었던건지 아니면 원래 그정도의 케파는 안되는건지 대수롭지 않았다. 천문대는 다른 산에 따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화산도 있다. 여건이 안되어서 가볼 수는 없었다.



Mirador de las peñitas

arco de las peñitas라는 자연석 아치를 보기 위해 돌산을 올랐는데 길을 잘못 든 상태에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기어오르려니 기력이 다해 결국은 보지 못했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예배당도 나름 포토 스팟. 겁없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다람쥐들도 귀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고 감동을 주었던 것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지팡이를 짚고 저 바위산에서 내려오던 할아버지였다. 나도 언젠가는 저 할아버지같은 노인이 되고 싶다. 언제나 여행하고 싶고, 여행할만큼 건강하며 여전히 궁금한게 많은, 호기심을 잃지않는 노인. 



Mirador Playa de Ajuy
Mirador Playa de Ajuy
끝날 줄 모르는 황무지 돌산 자랑... 같아보이지만 다른 돌산이다. 염소들이 돌산을 타고 돌아다닌다. 내륙에 위치한 arco de las peñitas와 달리 이곳은 바다에 접해있고, 사실상 돌산이라기보다는 절벽지형에 가깝다.


viva la vida

어쨌든 사진만으로도 이미 답도 없이 황량하지만 자연환경이 척박해도 사람들까지 척박하지는 않다. 



🍴음식


해산물 빠에야
Pimientos de Padrón
Restaurante Cangrejo Colorao
음식을 자랑으로 삼을만한 섬은 분명히 아니었으나 그래도 저녁식사를 할만한 곳은 있었다. 

어떻게됐든 스페인령이라 당연히 등장하는 빠에야. 해물도 신선하고 양은 상당했고 맛도 있었다. 저 고추를 튀겨 놓은 Pimientos de Padrón이 푸에르테벤투라를 비롯한 까나리 제도에서 많이 먹는 타파스라고 한다. 아주 특출난 맛은 아니지만 나름 지역 음식이니 한번쯤 먹어볼만 하다.


😶 아쉬운 점

⎷ 커피는 맛있는 곳이 있기는 할까? 최악이었다. 시내의 쇼핑센터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마스터밀크로 만든 싸구려 카푸치노가 나와서 정말 한입 먹고 다버림. 
⎷ 모래바람이 정말 심하다
⎷ 차가 없으면 여행 불가
⎷ 여기는 반려견과 함께 여행하지 않는 것이 낫다. 반려견이 들어갈 수 없는 식당이 많고, 대부분의 해안에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수 없다.


⭐️ 총평

최고의 소득은 아마도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ㅎㅎ 이탈리아에 돌아와 마시는 커피와 푸른 잎을 가진 나무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여행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듄의 아라키스 감성을 원하는거라면. 개인적으로 푸에르테벤투라는 하지 말았어야 했던 여행이었다. 푸에르테벤투라도 나에게 좋은 여행지가 되어주지는 못했고 나에게도 이곳을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가겠냐고 물으면 분명하게 no인데, 어쨌든 기억에 남는 여행지긴 하다. 어이없는 공사판같고 광산같은 풍경과, 백번 아름다운 사막과 푸른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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